김동일. 나에게 영감은 ‘새벽’이다.

Moments of Inspiration
잊히지 않는 영감, 단 하나의 순간이 있다면?
길스토리 프로보노 9인에게 ‘영감의 순간’에 대해 물었습니다.

김동일
DONGIL KIM / PHOTOGRAPHER

포토그래퍼 김동일은 신문방송학 전공 당시 보도사진을 접하고 사진에 매료되어 현재 작업실 '사진관 닿을'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 그 몸살 같은 새벽의 흔적들이 간신히 길 위에 서 있는 모든 이에게 늘 어여쁨으로 닿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처음’ 또는 ‘강렬하게’ 영감을 받았던 순간이 있다면 이야기해 주세요.
___ 피렌체의 어느 광장에서 강한 햇살 아래 저의 그림자를 가만히 본 적이 있습니다. 그곳의 햇살은 무엇인가 달라서 그림자가 손가락 마디 하나하나까지 표현할 정도로 선명하고 강렬했어요. 비스듬히 누운 태양의 강한 빛이 너무도 눈부셔 건물의 그림자로 숨어들어야 할 정도였죠. 사라진 그림자를 보며 아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림자는 온전히 제 자신을 표현하고 있었어요. 정말로 신이 있다면 그때의 그림자로 저를 구별했을 것입니다. 제 안에서 시작된 신의 시선에 대한 영감은 결국 저를 근처 베키오 궁전의 탑으로 끌고 가 스스로를 신으로 만들었습니다.

최근에 영감을 불러일으킨 ‘무엇’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___ 웨딩 사진을 주로 촬영합니다. 역시 영감은 제 안에서 찾아요. 제 마음이 사랑으로 충만해야 사진이 사랑스러울 거라 믿기 때문입니다. 그날 아침 무슨 일이 있었든 웨딩홀에 들어설 때는 제 마음 역시 사랑스러워야 합니다. 그래서 웨딩 사진을 촬영하러 가는 차 안에서는 사랑을 노래하는 음악을 주로 듣습니다. 이를테면 영화 <어바웃 타임> OST ‘How Long Will I Love You’ 같은 음악을 듣는 식입니다. 스튜디오 안에서 인물 사진을 찍을 때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피사체가 되는 인물과 대화를 많이 하고 그 감정에 동화되려 노력해요. 그리고 인물에 동화된 나에게서 영감을 찾습니다. 길스토리 크리에이티브 랩에 기고한 <사진가로 살며>의 사진과 글이 어쩌면 제 영감의 원천에 대한 얘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시선이 닿는 그곳이 마음이 미소가
늘 어여쁘기를
나의 시선이 눈이 손짓이 당신의 어여쁨에
늘 닿을 수 있기를
<사진가로 살며>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___ 베키오 궁전의 탑에서 신의 시선으로 내려다본 땅의 그림자에서 받은 영감으로 사진을 찍고 글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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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내려다보는 건 어쩌면 그림자가 아닐까.
악마가 어둠을 좋아하는 건 그 때문일지도.
<악마가 어둠을 좋아하는 이유>

나에게 영감이란?
___ 나에게 영감은 ‘새벽’이다.
모두가 잠든 고요한, 그림자마저 없는 그 시간을 말함은 아닙니다. 새벽이 어떠한 시간의 일부이긴 하지만 매일 다가오는 그 시간의 공기 냄새, 그 시간에 제가 있는 공간, 내 머릿속의 생각들과 감정들이 모두 영감이 됩니다. 저는 제가 아닌 외부에서 어떤 영감을 받은 적이 없다고 생각해요. 글쎄, 있을지 모르겠으나 강렬하지 않아서인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어릴 적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물어오면 저는 대답을 못 했어요. 그 시절에는 존경하는 이를 말하라 하면, 이순신이었고 세종대왕이었으며 안중근이었고 대통령이어야 했어요. 나의 존경을 그들에게서 혹은 다른 누군가에게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었죠. 물론 지금 역시 존경하는 이를 물어오면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영감 역시 외부의 어떤 것에서 받은 적이 없어요. 새벽의 내 감정들과, 새벽의 내 공간과, 새벽의 공기 냄새에서, 온전히 내 안에서 영감은 찾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