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나에게 영감은 ‘행동하는 것’이다.

Moments of Inspiration
잊히지 않는 영감, 단 하나의 순간이 있다면?
길스토리 프로보노 9인에게 ‘영감의 순간’에 대해 물었습니다.

김형석
HYUNGSEOK KIM / PHOTOGRAPHER

사진작가 김형석은 자크 타티(Jacques Tati)와 에릭 로메르(Eric Rohmer)의 영화를 좋아하고 여행을 즐기며 음악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무엇보다도 ‘들여다보기 좋아하는’ 사진작가다.

‘처음’ 또는 ‘강렬하게’ 영감을 받았던 순간이 있다면 이야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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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 처음으로 영감 받은 순간을 기억하긴 어렵지만, 제게 영감을 주는 존재로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분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1세대 재즈 드러머로 활동하셨던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는 부모님을 일찍 여의시고, 남은 가족들마저 뿔뿔이 흩어져 살며 혼란스러웠던 유년 시절을 보내셨는데, 기적처럼 서라벌예고에 특채로(절대음감을 가지셨기에 계명을 듣고 맞히는 심사에서 극적으로 합격하셨다고 합니다) 입학해 미 8군 무대부터 세시봉 무대까지 두루 섭렵하신 분입니다. SBS <스타킹>이라는 프로그램에서 1등을 하기도 하셨어요. 이제 곧 팔순을 바라보는 연세지만 여전히 ‘빅맥’을 좋아하시고, 녹슬지 않은 손놀림으로 ‘Take 5’를 연주하십니다. 제가 무엇을 하든 늘 응원해주시고 열린 사고를 갖게 해주신 분이시기에, 아버지는 나에게 영감 그 자체입니다.

최근에 영감을 불러일으킨 ‘무엇’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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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 최근에 턴테이블로 음악을 듣는 취미가 생겼어요. 아직은 초보 DJ지만 음악 두 곡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연습을 할 때면 온전히 음악에 집중할 수 있는 동시에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잡생각이 사라져야 영감이 떠오르더라고요. 게다가 빈티지 LP를 구하러 다니면서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됐어요. 얼마 전 구입한 디스코 앨범에는 작가 키스 해링(Keith Haring)의 음성이 녹음된 트랙이 있었어요. 또 아버지가 물려주신 LP 중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제작된 시 낭독 음반이 있는데 박목월 시인의 목소리도 생생히 들을 수 있었어요.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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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 안타깝게도 최근에는 개인 사진 작업을 거의 하지 못했어요. 코로나로 인해 여행을 못 가다 보니 카메라를 손에 들 일이 점점 줄어들더라고요. 그래도 하나 꼽자면, 지난가을 배롱나무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 갑자기 떠났던 때가 생각납니다. 좋은 음악을 듣다 보면 즉흥적으로 떠날 수 있는 용기가 생기는 편인데, 그때는 크루앙빈(Khruangbin)의 음악을 듣다가 영감을 받아 훌쩍 떠나 담양의 명옥헌을 찾았습니다. 크루앙빈의 전곡을 들으며 명옥헌의 배롱나무를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어요.

나에게 영감이란?
___ 나에게 영감은 ‘행동하는 것’이다.
책상맡에서 아무리 생각만 해봤자 떠오르는 것은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두 다리를 움직여 제 발로 찾아 나서야만 영감을 만날 수 있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