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희. 함께하는 순간으로부터 얻는 영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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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보타니컬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있다. 식물이라는 뜻의 Botanical이라는 단어에 명사 Designer가 붙은 말이다. 단어의 뜻을 그대로 읽으면 식물을 디자인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된다. 평소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은 자주 들어봤지만, 보타니컬 디자이너는 역시 생소하다. 꽃을 가꾸고 꾸미는 일과는 다른 구석이 있는 걸까?
오늘 만나볼 <엘 트라바이(Elle Travaille)>의 박소희 대표는 자신을 스스로 보타니컬 디자이너라고 부르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작업을 하는 동안에 공간을 구성하는 화훼만이 아니라 그 주변의 환경까지도 모두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주어진 공간을 꾸미는 일보다는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는 일에 더 가깝다.

최근에는 동료 플로리스트와 함께 구성한 프로젝트 그룹 ‘데어비(There Be)’로도 활동하고 있다. 살아 있는 식물이 시들어가는 과정을 하나의 예술로 승화시킨 작품도 선보였다. 주변에 흩어진 조각들을 엮어 자신만의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는 박소희 대표를 신사동 <엘 트라바이> 작업실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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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___ 안녕하세요? 박소희입니다. 플로리스트를 기반으로 하는 작업들을 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획득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조경 작가라기보다는 공간 디자이너에 조금 더 가깝게 활동하고 있는데요. 자연적인 소재로 공간을 채우는 일을 하다 보니 그게 다른 말로는 조경 작가로 표현이 되곤 합니다. 그렇다고 원예까지 직접 하는 것은 아니어서 스스로를 ‘보타니컬 디자이너(Botanical Designer)’라고 부르고, 그렇게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플로리스트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셨던 계기가 있을까요?
___ 사실 처음 하고 싶었던 건 쇼콜라티에(Chocolatier)였어요. 그런 기술이 하나 있으면 할머니가 될 때까지 평생 뭔가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초콜릿을 만드는 일이 뭔가 있어 보였거든요. ‘이왕 하는 거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 파리에 가서 배워 온 다음에 한국에서 아틀리에를 차려야겠다’ 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길로 바로 파리로 향했죠. 하지만 막상 시작해보니 쇼콜라티에가 되는 과정은 제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다르더라고요.
초콜릿을 만드는 일은 일주일 만에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그때 제 나이가 이미 30살이었어요. 다니던 회사까지 그만두고 쇼콜라티에가 되겠다고 프랑스에 갔었거든요. 다시 한국에 돌아가기에는 너무 창피했고, 무엇보다 제 인생을 수습하고 싶었어요. 한편으로는 그렇게 좋아하는 파리에서 계속 살아보고 싶기도 했고요. 그렇게 만나게 된 게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이었어요. 당시의 저는 작약이 뭔지도 제대로 모르고, 장미꽃과 안개꽃 정도만 아는 평범한 사람이었는데요. 어느 날 방문하게 된 플로리스트 교육 기관에서 학교 학생들이 벽을 따라 자란 담쟁이가 있는 정원에서 가위를 들고 꽃들을 직접 잘라 뭔가를 만드는 장면을 보고 완전히 반해버렸어요. 그렇게 저는 플로리스트가 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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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라는 도시를 사랑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___ 저는 플로리스트 일을 하면서도 ‘진짜’ 자연이 있는 곳에는 별로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도시에 존재하는 자연이 훨씬 흥미로웠는데요. 도심 안에 꾸며져 있는 공원이 재미있고, 개인이 꾸민 정원 같은 데에서 재미를 느꼈어요. 파리라는 도시가 그런 것들을 잘 가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도시 전체가 예쁘고 아름답다고 느껴진다고 할까요?
물론 프랑스에서 지내는 동안 유학생으로서의 삶이 힘들어서 울면서 집에 갈 때도 많았어요. 그런데 그런 순간조차 센강을 걸으며 에펠탑을 보고 노트르담 성당을 보면 다 위로가 되더라고요. 아무리 힘들더라도 파리라는 도시 자체가 예뻐서 모든 게 용서되었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도 파리를 매년 가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파리라는 도시로부터 얻는 그런 영감들이 현재의 작업이나 활동에 영향을 주는 부분도 있는지 궁금합니다.
___ 억지로 어떤 의미를 만들어서 연결 짓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곳에서의 인연이 지금 제 모습에 영향을 준 부분은 있는 것 같아요. 특히, 프랑스에서 처음 일했던 직장의 사장님이 대표적입니다. 그때의 저는 아무 것도 모르던 아이였어요. 학교에서는 자격증 시험을 위한 기능적인 것들만 가르쳐 줬으니까요. 제게 더 다양한 경험을 해봐야 된다고 하시면서 많은 현장을 소개해 주신 분이 그 사장님이셨어요. 그분 역시 공간을 연출하시던 분이셨거든요. 그런 경험들이 지금의 저를 만든 것 같습니다.

* 전문은 도서 [CUP vol.0: 5 Years Record of GILSTORY]에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