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준. 고요하고 아늑한 세계, 그만의 작은 영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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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마치 어제 일처럼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는가? 건조한 얼굴에 피식 웃음을 짓게 하거나 기쁨이 차오르게 만드는 그런 기억 말이다. 때로 그 기억은 DNA처럼 ‘나’라는 사람을 정확하게 설명해주는 장면이 되기도 한다. ‘영감’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만난 인터뷰이의 얼굴에서 그 기쁨을 본 순간부터 인터뷰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는 끝이 나고, ‘영감’이라는 단어가 현실의 또렷한 감각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어린 시절, 엄마와 처음으로 갔던 영화관의 질감을 기억하던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은 자라서 영화 칼럼니스트가 되었다. 내가 만난 인터뷰이, 조영준 작가의 이야기다. 어른이 된 지금도 영화관의 조명이 어두워지는 순간이면 늘 설렌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은 소년을 닮아 있다. 그를 가슴 뛰게 하는 영감은 작은 영화관을 연상케 하는 고요하고 아늑한 세계에서 시작된다. 소소한 일상에서 반짝이는 순간을 건져 올리는 조영준 작가의 시선은 그의 글처럼 온기를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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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매체에 영화 관련 글을 주로 써오고 있는데, 영화에 대한 글을 쓰게 된 계기가 있나요?
___ 학창 시절부터 영화관에서 영화 보는 걸 좋아했어요. 글 쓰는 것도 좋아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화에 대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면 좋겠다고 막연하게 꿈꿨던 적은 있지만 영화 칼럼니스트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어떤 우연들이 만나 저를 영화 칼럼니스트라는 직업으로 이끈 것 같아요. 말하고 보니 좀 신기합니다.

명함을 받았을 때 영화 <원 데이(One Day)> 포스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명함에 넣은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___ <원 데이(One Day)>는 제가 좋아하는 영화들 가운데 하나예요. 영화 자체만 보면 그렇게 특별한 영화는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영화의 마지막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스펙터클한 영화도 좋지만 한 사람의 드라마에 대해 깊이 조명해주는 영화, 특히나 남겨진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도 담담히 그려낸 부분이 감동을 줍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더 이상은 말하지 않을게요. 궁금하신 분들은 영화를 보시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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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서 주로 영감을 얻는 편인가요?
___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좋아하는데, 영화 <환상의 빛>을 보면 지평선과 수평선 사이로 상여 행렬이 지나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장면을 보고 소름이 돋았어요. 장면 하나로 삶과 죽음을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연출이었죠. 이렇게 영화를 보며 크고 작은 영감을 받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영화를 만든 감독이나 배우들의 말과 행동, 태도를 보면서 영감을 받을 때가 많아요. 몇 년 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류이치 사카모토 음악감독을 가까이서 보게 됐는데 일흔이 다 된 나이에도 불구하고 백발의 아티스트 눈에서 광채가 나더라고요. 사람 눈에서 그렇게 반짝이는 빛은 처음 봤어요. 오랜 세월 인내하며 한길을 걸어온 예술가의 오라가 느껴졌죠. 나도 그런 눈빛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순간 영감이라면 영감일까, 삶의 새로운 방향성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배우들의 말을 통해 영감을 받은 경험이 있나요?
___ 10년째 노트북 바탕화면에 깔아놓은 문구가 있어요. 배우 틸다 스윈튼이 오래전, tvN <백지연의 피플 인사이드>에 출연해 한 말입니다. “당신의 마음이 열려 있고 자신에 대해 진정으로 표현할 수 있을 때 그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글 쓰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나를 오롯이 다 보여주는 데 겁이 많은 편이에요. 그래서 틸다 스윈튼의 이 말이 더 와닿습니다. 영감 역시 내 마음이 열려 있고 뭔가를 표현하고 싶을 때 더 많이 찾아오는 것 같아요.

* 전문은 도서 [CUP vol.0: 5 Years Record of GILSTORY]에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