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택트 시대에 매거진을 창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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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팬들의 편지를 모아서 한꺼번에 읽는 것을 좋아한다. 나의 ‘소확행’ 중 하나다. 내 방 한가득 편지를 펼쳐두고 한 장씩 읽으면서 차곡차곡 정리하는 것 또한 편지를 읽고 난 후에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정서적인 만족감이다. 나만의 힐링이다. 손 편지, 그 종이에서 느껴지는 감촉, 여러 종류의 편지지 색깔, 종이에 배인 펜의 잉크 냄새까지. 그런 걸 보고 만지는 게 좋다.

처음 받아본 팬레터에는 내가 참여했던 작품이나 연기한 인물을 보고 공감한 이야기, 작품을 통해 위안받은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여러 지역에 사는 팬들이 자기가 사는 동네 이야기부터 인생 이야기까지 팬레터 안에 모두 담아 보내주신다. 해외 팬들의 이야기나 해외 교포 분들의 관심사, 연애편지 같은 이야기도 있으니 이 무궁무진한 이야기보따리를 여는 것은 그 어떤 재미있는 영화 한 편을 보는 것보다 흥미롭다.

편지를 자주 보내시는 분들은 글씨체만 봐도 알아볼 정도다. 이렇게 친숙한 손 편지는 더욱 반갑다. 오랜 시간 동안 전해진 그분들의 이야기는 나와 한 시대를 함께 살아간다는 동질감이 느껴져서인지 그 안에서 추억을 공유하고 서로 기대며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설렘을 느낀다. 그리고 그 편지들에서 위로를 받고 힘을 얻으며, 행복을 느끼고 용기를 얻는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함께 이 시대를 걷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 비로소 나도 온전한 내가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감동을 느끼고 그 감동이 확장되어 책임감을 갖게 되면 사람이 진지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길스토리’다. 나에게는 길스토리가 단순하게 시민단체, 문화예술NGO로만 정의 내려지지 않는다. 앞서 얘기했듯 이것이 그저 ‘감동’으로 그쳤다면, 지금 이렇게 함께 이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도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묻는다. 언택트, 코로나 시대에 매거진을 왜 만드느냐고. 그게 어떤 의미가 있냐고. 있는 잡지들도 폐간되는 마당에 왜 거꾸로 창간을 하냐고 걱정한다.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그 성실함이 쌓여 삶이 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거창하거나 유난스럽지 않게 내가 삶에서 느낀 따뜻함과 위로, 배려, 용기를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나눌 수 있는 수단은 많겠지만 지금 이 시대 사람들에게 우리의 진심이 잘 전달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우리가 전하고 싶은 가치와 이야기를 가장 잘 이해하고 공감하게 할 수 있는 것을 찾다 보니 손 편지처럼 직접 손으로 만지는 종이책이었다.

세상에는 위기와 위험이 늘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지키면서 살아갈 가치가 많다는 걸 우린 다 알고 있지 않은가. 물론 내가 혼자였다면 매거진을 만드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다. 그렇게 매거진 <CUP>은 혼자가 아닌 우리가 함께 걸어온 길의 흔적을 이어 창간하게 되었다.

새것도 좋고 편리한 것도 좋지만 잊지 말고 가슴에 새기고 후대에도 전해줘야 할 선물 같은 것이 있다. 그것을 <CUP>에 온전히 담아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어떤 것이 담길지 우리 모두가 함께 궁금해하며 기대해보자. 힘찬 일이 생길 수 있도록!

길스토리 대표 김남길 b9bfc6cf380207bc0e6b0f7d84f1bcca_1652603321_367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