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lgrims on the Road, Seoul City Wall

길을 읽어주는 남자가 걸어온 길, 한양도성

<길을 읽어주는 남자>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길 길을 찾고, 그 길을 걸으며 나의 이야기를 더한다면 우리가 함께 더불어 살고 있음을 알게 되리라는 작은 바람에서 시작되었다. 잊혀가는 소중한 길을 찾고 그 길을 읽어주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바라보았고, 그렇게 얻은 경험을 많은 이들과 나누고자 했다. 북촌, 성북, 한양도성, 제주, 남해, 삼척 등 길을 읽어주는 남자가 걸어온 지난 발자취를 따라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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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성길을 따라 시간을 거슬러 가다

한양도성은 늘 우리 곁에 있었다. 서울의 역사와 문화, 미래의 가치를 품고 있는 한양도성에서 우리의 가치를 체험할 수 있는 길을 찾고, 그 길을 직접 걸었다. 오랜 세월 서울의 울타리였던 한양도성은 과거와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를 연결하는 길을 새롭게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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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까지 명맥이 이어지는 한양도성 ‘순성(巡城)놀이’는 선비들의 간절한 발걸음에서 유래했다. 과거시험을 보러 한양에 상경한 선비들의 경우, 도성을 한 바퀴 돌며 급제를 비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도성민들에게도 전해져 순성놀이가 생겨났다고 회자된다. 정조 때 학자인 유득공(1748~1807)은 <경도잡지(京都雜志)>에서 순성놀이를 ‘도성을 한 바퀴 빙 돌아서 안팎의 멋진 경치를 구경하는 놀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서울 도심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어 친근한 한양도성이지만, 길을 읽어주는 남자와 함께 순성놀이를 떠나기 전에는 잠시 잊었던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양도성은 조선왕조 도읍지인 한성부의 도심 경계를 표시하는 성이다. 624년 전, 태조 5년(1396)에 백악(북악산) · 낙타(낙산) · 목멱(남산) · 인왕의 내사산 능선을 따라 축조한 이후 여러 차례 개축을 거쳤다. 전체 길이 약 18.6km에 이르며, 1910년까지 도성 기능을 수행했다. 하지만 근대화 과정에서 옛 모습을 잃었다. 1899년 도성 안팎을 연결하는 전차가 개통됨에 따라 먼저 성문이 제 기능을 잃었다. 소의문은 1914년에 헐렸고 돈의문은 1915년에 건축 자재로 매각되었다. 일제는 1925년 남산 조선신궁과 흥인지문 옆 경성운동장을 지을 때 주변 성벽을 헐어버리고 성돌을 석재로 썼다. 해방 이후 도로, 공공건물 등을 지으며 성벽이 훼손되는 일이 되풀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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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의 중건은 1968년 1·21 사태 직후 숙정문 주변에서 시작되어 1974년부터 전 구간으로 확장되었지만, 훼손된 문화재를 회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해가 부족했던 과거에는 단절된 구간을 연결하는 데에만 치중해 오히려 주변 지형과 원 석재를 훼손하는 경우도 일어났다. 현재 한양도성은 전체 구간의 70%, 총 13.7km 구간이 남아 있거나 중건되었다. 숙정문, 광희문, 혜화문을 중건하였고 광희문과 혜화문은 부득이하게 원래 자리가 아닌 곳에 세워졌다. 작년 11월, 혜화문의 옛 현판(1744년)이 복원되기도 했다. 올해 10월, 52년 만에 북악산 제한 구역이었던 성곽 북측 면을 열었고, 2022년까지 숙정문-삼청공원 구간이 전면 개방될 예정이다. 최근 코로나 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슬기로운 습관으로 ‘비대면 순성놀이’가 유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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